아이는 엄마의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이다

· 2019년 2월 18일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며, 생명의 탄생 자체보다 더 위대한 예술 작품이나 창조물은 없다.

“아이는 엄마의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이다.”라는 말 또는 이와 비슷한 취지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의미를 어떤 식으로 풀어서 표현하든 기저에 깔린 그 감성은 분명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며, 생명의 탄생 자체보다 더 위대한 예술 작품이나 창조물은 없다.

이 걸작은 만드는 데 9개월이 걸리고 발전시키는 데 한평생이 걸린다.

아이는 예술 작품이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아이가 자궁에 있을 때부터 아이와 연결을 시작한다. 어떻게 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가는지 느낀다.

아이는 부모의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이다

아이는 엄마의 고통을 느낀다. 일전에 엄마 속에서 엄마의 심장 박동을 느꼈던 것처럼.

아이는 엄마의 힘을 안다. 피로의 한숨을 들었고, 엄마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는 깊은 호흡도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엄마가 불가능하게 보였던 것과 맞서 싸우는 걸 느꼈다.

아이는 엄마를 통해 보호받으며, 생명으로 잉태된다. 아이가 무방비 상태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사랑스런 존재는 스스로 생명의 비밀을 쥐고 있다.

아이는 힘, 강인함,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엄마를 과거로 실어 나르는 동시에, 지금 여기 현재의 순간을 살게하며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아이는 부드러움과 천진난만함을 우리에게 불어넣어 준다. 바쁘고 북적대는 삶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능력은 어떤 예술 작품의 힘보다 강하다. 아이의 농담과 어리광은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더 매력적이다.

아이는 엄마의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이다

아이는 어떤 예술 작품보다 뛰어나다

아이 피부의 냄새, 익살스러운 장난끼, 아이가 시선으로 표현하는 모든 것은 진정 예술 작품보다 더 위대하다.

아이의 성장은 프리다 칼로의 작품보다 더 환상적이며, 아이가 갈등을 직면하고 속수무책이나 좌절을 느끼는 것을 볼 때는 뭉크의 작품보다도 더 혼란스럽다. 아이가 밖에서나 집에서, 여러 가지 행동과 다양한 면모를 보여 줄 때는 피카소의 입체파 작품보다 더 다차원적이다.

아이의 탄생과 성장만큼 마술적인 것을 담을 수 있는 박물관은 없다. 그리고 아이의 진실성은 그 어떤 예술 작품과도 비견될 수 없다. 아이는  그렇게 많은 것을 표현하면서도 그 이상의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작품인 것이다.

유년 시절 아이가 끌어당기는 매력은 거부하기가 어렵다. 아이는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이다. 엄마는 이 아이를 조용히 음미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엄마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이 존재에 완전히 매료된다. 흠뻑 빠지게 되고 자기 자신을 내려놓게 된다.

한 번의 키스, 한 번의 포옹, 사랑한다는 한마디로 온 세상을 얻은 것만 같다.

아이는 사랑의 열매이며, 희망의 화신이다.

엄마는 잠시 멈추고 아이의 존재에 대해 감사한다. 모든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아이의 모든 것에서 축복을 느낀다. 아이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자연스런 우아함에 경탄한다. 이 작은 아이에게서 끝없이 광대무변한 사랑의 의미를 찾는다.